“세상 피해 남국으로 내려왔소 / 바닷가 곁에서 몸소 농사지으려고 / 창문 열면 어부들의 노랫소리 좋을씨고 / 베개 베고 누우면 / 노 젓는 소리 들리네 / 포구는 모두 큰 바다로 통했는데 / 먼 산은 절반이나 구름에 잠겼네 / 모래 위 갈매기 놀라지 않고 날지 않으니 / 저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야겠네”
  조선 후기 사람 반계 유형원이 부안 변산에 거처를 정한 뒤 읊은 ‘지부안’이라는 시다. ‘반계수록’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유형원은 벼슬길에 대한 뜻을 접고 외가와 연이 닿는 부안 변산 우동리로 내려왔다. 그는 이곳에서 부안의 풍요로움과 백성들의 순박한 삶에 심취했다. 그리하여 서당을 짓고 후학을 지도하는 한편 국가 개혁구상을 담은 ‘반계수록’을 지었다.
  부안의 역사는 유형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안은 백제시대 부령현과 보안현이 설치돼 있던 유서 깊은 고장으로 백제 부흥운동의 본거지였으며 그 유명한 백강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고려시대엔 청자를 구운 도요지로 명성이 높았고 조선조 태종 때 부령과 보안을 합해 부안이라 칭한 뒤에도 곡창이자 해산물이 풍부한 부촌의 대명사였다.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로 활약한 박문수도 영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거리낌 없이 “어염시초(물고기와 소금, 땔나무)가 풍부해 부모를 봉양하기 좋으니 생거부안입니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부안에는 생거부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만큼 살기 좋다는 뜻이다.
  부안이 내년 정명 6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군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학술대회를 열고 부안의 역사와 문화, 인문, 생태가치를 재조명했다. 이날 학술대회 참석자들은 한결 같이 부안이 갖고 있는 특유의 역사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잘 살려 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안군은 이미 여러 차례 간담회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도 수렴한 바 있다는 전언이다.
  지방사 혹은 향토사는 그간 소홀한 바가 있었다. 국사의 거대담론에 묻혀 작은 향토의 역사는 빛을 잃었다. 또 감성과 주관이 앞선다고 해서 학계에서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명 600주년을 맞은 부안 향토사 발굴 정리 작업은 이런 과거 행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제 지방도 중앙의 움직임에 추종하는 시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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