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 민족 문화의 시발 지점이다.
우리 민족이 어둠과 혼란에 싸여있을 때 향도의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전북이다.
금산사 선운사 마애불등 미래신앙인 미륵불의 고장이고, 동학혁명 증산교 원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정신사적 측면에서 한민족을 논할 때 전북 없이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전북의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성이 현저히 약화되어 이제 존재감이 가벼이 느껴지는 형편에 서 있다.
전북의 능력이 약화된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다.
먼저 역사적인 요인을 보면,
중국에 식민지를 두었던 찬란한 문화의 백제는 멸망 후 관료 등급이 8등급 강등 당한다.
이 낮은 관료로는 신라 조정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소외의 길을 걷는다.
고려 초기에 호남 출신의 고관들이 정권 중심에 서지만 역시 시기가 지나면서 조작된 ‘훈요십조’가 전해질 만큼 소외된다.
전주 이씨가 세운 나라 조선에서도 정여립의 기축옥사 이후 어려움을 겪는다.
해방 후 부통령 함태영, 고시위원장 배은희 대법원장 김병로 등 새로운 나라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활동하지만 5·16 이후 다시 소외의 길을 걷는다. 
현재 전북의 인구는 대구 경북의 1/3 이고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 수준이다. 영호남 지역주의 구도가 존재하는 마당에 이런 인구 구성은 전북의 존재감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딜레마에 쌓인 전북이 국가의 중심세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진 것인가?
전북의 가치가 빛날 기회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단연코 전북의 역할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전북은 현대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자기희생을 통해 민족의 올바른 진로를 제시하고 선택했다. 때로는 소수로 고립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주의로 폄훼되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전북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을 보자.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문제를 안고 한길로 가는 곳, 광화문 농성장과 풍남문 농성장뿐이다. 이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다. 지금 전북은 이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취약점을 인정하되 지혜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 때다.  몽골이 전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탁월한 리더쉽 칭기스칸이라는 인물과 당시 100만 밖에 안 되는 국민이었지만 단결의 힘 때문이었다. 또 1966년 월드컵 대회에서 유럽선수들의 큰 키를 이겨내기 위해 창안한 북한의 사다리 전법 같은 지혜도 요구된다.
전북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정치와 운동, 파벌과 학벌, 경직된 이념으로 나눠 싸우면 안된다. 호남의 국회의원이나 정치세력들도 단합된 노력을 해야 한다. 거기서 보석 같은 인재들을 찾아 키워내야 하며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친노든 비노든 전북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왜냐 전북이 없으면 그들도 없기 때문이다.
정동영, 정세균 김원기 같은 중진 정치인들이 전북문제를 부여잡고 전북을 키워내는데 희생하고 봉사하고, 도민이 단결로 뒷받침 하면 안 될 일도 없다. 전북이 자강의지를 잃으면 전북도 없고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긍지가 필요하다. 정권을 교체하고 남북화해와 민주회복, 균형발전과 복지사회를 이룰 대안을 찾아내 전북이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각자도생만 앞세우지 말고 함께 전북을 살릴 인물과 비전과 정책을 세우는 게 절실하다. 아울러, 전북 패배주의의 망령을 깨야 한다. 전북다운 기개와 투지를 살려내도록 서로를 자극하고 감싸 안고 동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과 비전과 정책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필자가 밑거름이 되어 ‘전북발전을 위한 도민 모임’(가)을 설립하는 이유이다.

2015년 오늘, 역사는 전북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전북이 중심이 되어 민족을 살리는 길을 제시하라고./강익현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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