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광기와 관능이 뒤섞인 혁명적인 시 세계를 보여준 ‘화사집’을 시작으로 전통의 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에서 한국정신의 원형을 끄집어낸 ‘신라초’, 겨레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마음과 정서, 지혜를 노래한 ‘동천’을 펴냈다.

뿐만이 아니다. 유년 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을 변용해 한국신화를 새로이 창조한 ‘질마재 신화’, 넉넉한 여유와 풍류 정신으로 세상 고달픔을 넘어선 ‘떠돌이의 시’, 특유의 세계 견문기를 펼친 ‘서으로 가는 달처럼…’, 민족과 자신의 과거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아낸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을 써내려갔다.

고희를 넘겨서도 그간 살펴본 세상과 자신의 삶을 담은 ‘팔할이 바람’부터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80소년 떠돌이의 시’까지 왕성하게 선보였다. 고창 출생으로 특유의 감성을 지방색 나아가 모국의 향기가 짙은 언어들로 표현,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전했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친일행적으로 인해 관심과 연구가 예전 같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겨레의 말과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한국의 대표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작품세계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집대성된다. 시,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옛이야기, 소설, 희곡, 번역, 전기 등 생전에 나온 저서를 망라한 ‘미당 서정주 전집(전20권)’을 2016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출간하는 것.

첫 결실인 ‘미당 시전집(전5권)’은 ‘화사집(1941)’부터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까지 15권의 시집과 ‘서정주문학전집(일지사, 1972’) 제1권의 신작시 55편을 포함해 총 950편이 수록된다. 그의 시전집은 민음사가 1994년 완간한 ‘미당 서정주 시전집’에 이어 두 번째지만 사후 정본으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남호 고려대 교육부총장, 이경철 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전옥란 작가, 최현식 인하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등 미당 연구자와 제자들은 전집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2013년부터 발간 작업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독자로 하고 서정주 시의 정본을 확정한다는 취지 아래 하나의 시를 매번 다르게 발표해 판본마다 다른 표기를 바로잡는데 주력했다. 각 시집의 초판을 기준으로 하되 개작을 반영하는가 하면 시작 노트, 최초 발표지 같은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이고 면밀하게 검토했다.

더불어 오·탈자를 수정했고 그간 누락된 시들을 찾아서 실었으며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띄어쓰기를 현대식으로 고쳤다. 각 책에 실렸던 ‘시인의 말’을 빠짐없이 수록해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1권에는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 ‘동천’ ‘서정주문학전집’, 2권에는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 3권에는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과 ‘서정주 연보’를 담았다. 4권에는 ‘노래’ ‘팔할이 바람’과 ‘작품 연보’를, 5권에는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80소년 떠돌이의 시 ’와 ‘수록시 총색인’을 실었다.

발간사에서는 “선생의 전집을 통해 그 분의 지고한 문학세계를 온전히 보존함은 우리 시대의 의무이자 보람이며 세상의 경사라 하겠다”면서 “작품을 읽는 건 겨레의 말과 마음을 아주 깊고 예민한 곳에서 만나는 일이 되며 겨레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은행나무. 443쪽. 권 당 20,0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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