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집이지 뭐. 자꾸 내면 사람들도 안 좋아해.”

허소라 군산대 명예교수하면 신석정 선생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본인보다 스승을 연구하고 알리는데 더욱 힘써온 까닭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문학인생을 일구는 데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1959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해 시대의 양심을 읊은 시집 ‘목종(1964)’과 첫사랑의 꿈이 어려 있는 산문집 ‘목마(1965)’를 펴냈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말이다. 이후에는 학자로서 문학을 논하고 교수로서 문학을 가르치며 문인으로서 7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학자이자 교수라는 직책에 가려져 있던 저자의 시인으로서의 역량이 여든에 다다라 유서처럼 아로새겨졌다. 여덟 번째 시집인 ‘이 풍진 세상’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인생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삶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다.

시대적, 역사적 관심사를 다룬 1장을 비롯해 아버지 등 그리운 존재들을 언급한 2장, 2000년 연변대학 강의를 위해 연변에 체류했던 당시의 일을 엮은 3장, 이 세상 곳곳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4장,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담은 5장이 그것.

가장 눈에 띄는 건 세상과 시대에 대한 관심이다. 이 나라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사회지도층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붕괴된 현실을 지적하고 풍자하는 걸 보면 다분히 부정적이며, 이는 인생무상까지 이어진다.

‘비의 곡-DJ를 위하여’에서는 ‘지금 밖은 비가 내리고/무시로 태풍이 분다/(중략)풀벌레 울음’이라며 독재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민초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흔들리는 성’에서는 ‘이미 성주는 부재’라는 글귀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한 선조와 한국전쟁 때 한강을 도강한 이승만을 암시한다.

표제시인 ‘이 풍진 세상’에서는 ‘우리가 굳이 떠밀지 않아도/겨울이 떠나고/(중략)/그러나 어느 곳에도/팔짱 낀 구경꾼은 없더라/(중략)/질펀한 싸움판이었으므로/그 속의 골리앗이었으므로.//’라고 쓰여 있는데, 사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지극히 염세적이지만 끝맺음은 사랑과 평화다.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 관점을 반영, 어리석은 백성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인 만큼 이들을 교화해 함께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삶은 살아내야 하며 희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인은 “20여년 만에 내놓은 시집의 자서를 쓰려니 마치 마지막 유서를 쓰고 있는 듯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그들의 일에 동참하고 고뇌하는 게 문학의 역할일진대 남은 생애에도 이를 명심하겠다”고 전했다.

진안 출생으로 전북대와 고려대를 거쳐 경희대에서 ‘신석정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어계 교류교수와 연변대학 조·한 학원 객좌교수,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제28대 회장, 초대 석정문학관장을 지냈다.

신아출판사. 131쪽. 12,0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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