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심에서 천 년 전 성벽의 실체를 확인했다.

전주 오목대에서 후백제 도성벽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됐다는 지난 5월 26일 본보 보도를 뒷받침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들이 밝혀져 별다른 성과가 없던 후백제 역사 복원에 의미 있는 걸음을 뗐다는 평가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10일 후백제 도성벽 추정지 시굴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2014년 전주시와 체결한 ‘후백제 복원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전주가 수도로 지정되고 호남지역이 기반이 되는 등 전주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후백제(900∼936년)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이뤄졌다.

오목대는 1944년 ‘전주부사’와 1992년 전영래 선생이 후백제 도성벽으로 추정한 곳이자 2014년 ‘대외관계로 본 후백제 학술세미나’에서 1948년 항공사진과 1968년 위성사진으로 토축물을 확인한 곳인 만큼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4월 28일부터 6월 초까지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1-3 일대에서 후백제 도성벽 시굴이 이뤄졌으며 그 결과 오목대 주변에서 성벽을 발견했다. 오목대는 1380년 태조 이성계의 남원 운봉 황산전투 승전 연회지, 1900년 고종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 비석과 비각 건립처럼 조선 왕조 관련해서만 주목받아 왔던 곳이다.

그러나 오목대 동쪽~남서쪽에 통일신라 후기부터 후백제에 해당하는 길이 251m, 폭 8m, 높이 3m~5m 내외 대규모 토석혼축 성벽이 확인됨에 따라, 천년 전주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줄 장소로 떠올랐다.

성벽의 구조와 출토유물은 통일신라 후기(9세기)부터 고려초 이전(10세기)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후백제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긴박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토석과 와적으로 혼축해 간단하다.

출토유물은 집선문 평기와 위주에 초기 어골문과 ‘대’·‘관’ 명문 기와 등 후백제 산성(9세기 말)으로 추정되는 순천 해룡산성 출토품을 비롯해 후백제 성으로 알려진 동고산성 북문지 3차 성벽과 서문지 2차 성벽, 나주 자미산성, 광양 마로산성, 광주 무진고성 출토유물과도 상통한다.

위치의 경우 ‘전주부사’ 기록과 전영래 선생에 따라 후백제 도성 남서쪽으로 여겨졌으나 조사 시 주 방어 대상이 성벽 안쪽으로 확인됨에 따라 북쪽 고토성처럼 성벽과 자연지형을 이용해 남쪽의 관문을 지키는 요새 기능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뿐만 아니라 오목대의 넓은 대지에는 아직도 후백제의 여러 방어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이렇듯 여러 정황들을 토대로 후백제 도성벽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확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흥선 학예연구사는 “후백제 명문이나 연호 같은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후백제 유적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면서 “하지만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까지 100년 사이에 후백제가 포함돼 있고 후백제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라 했을 때 100년 안에 포함된 유물이나 유적은 후백제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동고산성과 비교, 연구 성과가 미진한 전주 시내권역의 후백제 궁성과 관련유적에 대한 추가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장 공개회는 11일 오전 10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현장설명회는 12일 오후 3시에 열린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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