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구 전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

4년 마다 6월이 오면 지구촌은 월드컵에 매력 속에 빠져든다. 우리나라도 1986년부터 8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루어 낼 만큼 월드컵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이제는 단순한 참가를 넘어 16강 및 그 이상을 꿈꾸는 설렘 속에서 장맛비 오락가락 하는 6월을 보내왔다.
 그런데 시간을 거꾸로 4년씩 건너 뛰어가며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경기를 앞두고 며칠 동안 조마조마해 하고 경기가 시작되면 플레이 하나하나에 기쁨과 탄식이 교차하였지만, 그 출렁이던 감정의 조각들은 어느덧 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덤덤함으로 가라앉는 대신 각 대회 때마다 나와 주변의 생활모습이 어떠했는지 추억의 물결로 다가온다. 마치 19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의 노래들에 청춘의 추억이 배어 있어 향수에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1978년 월드컵과 1982년 월드컵은 아시아에 주어진 티켓이 한두 장 밖에 없어 우리나라가 지역예선도 통과하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던 당시로서는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가 열리는 날은 동네에 TV가 있는 집을 중심으로 기대감과 긴장감이 가득하였다. 중계 아나운서는 한국 팀이 상하의 모두 붉은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흑백TV와 흑백신문만 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한국 팀의 유니폼은 그저 약간 짙은 회색으로 보일 뿐이었다.
 원정경기를 라디오나 TV로 위성 중계할 때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같은 음색으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으로 시작되는 멘트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한국 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면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로 시작되는 웅장한 군가풍의 “이기자 대한건아” 노래가 나오면서 선수 개개인의 사진들이 슬라이드처럼 화면을 채웠고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동료들과 월드컵 얘기로 수다 꽃을 펼치곤 하였다.
 월드컵은 남의 나라의 잔치라고만 여겨지던 시절이 지나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우리가 나가게 되었을 때, 한국축구의 영웅 차범근 선수가 마라도나와 같은 세계적 스타와 함께 뛴다는 자체가 신기했었다. 그 대회의 아시아 예선에서는 그동안 한국의 본선진출을 막아 왔던 호주와 중동을 배제한 채 동아시아권에만 별도의 티켓이 주어졌고 당시만 해도 일본에게는 상대전적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여왔기에, 국민들은 32년만의 본선진출의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었다.
 1985년 7월 그 지역예선 4강전이었던가, 개장한지 얼마 안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인도네시아전을 보고 싶어 당시 유일하게 티켓예매를 하던 모 은행 본점에 가기 위하여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상경한 것도 추억의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구한 티켓을 들고 실제 경기장에 가서 TV로만 보던 ‘총알’선수와 ‘야생마’선수의 활약을 보며 뿌듯한 행복을 느꼈고, 그해 11월 초 드디어 일본을 꺾고 32년만의 본선진출이 확정되자마자 TV에서는 정규방송 대신에 축하 쇼프로그램이 이어졌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역대 월드컵은 누구에게나 그때그때 대표 팀의 스코어나 성적을 넘어 저마다의 추억과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지금은 노신사가 되어 가는 왕년의 스타들이 경기하던 장면을 인터넷 덕분에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다시 눈앞에 불러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 선수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축구선수 중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이나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분들은 더 이상 옛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보여 질 수 없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문득 서글퍼지곤 한다.
 지금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 훗날 우리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스포츠는 경쟁과 승리를 동반하기에 한쪽에는 기쁨과 환희를, 다른 한쪽에는 슬픔과 고난을 줄 수 있다. 또한 나라를 상징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국민들은 자신과 동일시하고 선수들의 승리 혹은 패배를 자신에게 투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고 설사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더 좋은 추억과 그리움이 안 좋은 일을 상쇄하듯이 월드컵의 승리와 패배에 연연하지 않은 브라질 월드컵이 되길 기대하며 이때를 떠올리게 되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6월로 남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