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총전라북도연합회 회장 선기현

한겨울 난롯가 노란 주전자 숨 쉬는 소리, 새끼고양이는 리듬을 타며 졸고 있다. 이안 감독과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속으로 호랑이가 되어서 산으로 들로 강으로... 가랑대며 꿈길을 쫓는다. 가로세로 한자 남짓, 옻칠한 상다리에 왼 오금쟁이 걸치고 앉아 연필을 깎는다. 툭! 하고 떨어지는 나무비늘은 향을 피운다. 향은 인중에 분칠을 하고 열 받은 주물난로 몸통을 한 바퀴 돌아 연통 꽂힌 북쪽 창, 바람길 타고 빠져나간다. 일 년이면 한두 번 같이하는 향이다. 여덟 폭 매화 병풍 뒤 반야심경계곡, 대들보 구렁이 눈치 보며 서생원 들랑거리는 대청마루 밑 다락방에서 60년째 기거하는 박달나무 제기그릇에서 나는 냄새, 이 모두는 조금 전 그 냄새와 같이한다.
설이 다가오는구나. 엊그제는 아동문학 하는 심 선배, 코끝에 바람 쐬러 가자했는데 가지 못했다. 가지 못한 그곳은 27년 만에 다시 찾아온 강추위, 올겨울 내내 서해바다 쓸어안고 비벼주던 변산반도 해안길이다. 격포 지나 모항 더 가서 곰소 항 도착해 설에 올릴 생선도 보고 거무튀튀한 갈치 속 젖 한 종발 챙겨들고 농협 맞은편 줄포 짬봉집에서 소주한잔 넣고 오자 했는데... 뱃속의 뉘우침이다. 남행 열차 칸, 동으로 가는 완행버스 속, 서해바다 끝자락 어청도 등대보고 가는 똑딱선 앞머리에서도 설은 찾아간다. 심지어 동네 어귀에서 기대고 서있는 싸리 빗자루도 이때는 서댄다. 민족최고의 명절, 설이다. 여기서 잠시 까치 까치 설날로 돌아가 본다.
설 386 상륙은 시작부터 요란하다. 19공탄에 설치된 나로호 명찰 달은 로켓트탄들, 펑크 난 바람소리와 함께 흰꼬리 물고 요리조리 종횡무진이다. 그중 나로호 7호는 중앙시장 국수집 장독대로, 삼남극장 자막처럼 걸려있는 국수발을 통과해서 건넛집 마루 밑, 양은그릇에 추락한다. 땡그렁! 하얀 털 스피츠 미쓰 메리, 죽는다 짖어대고 째나게 오색 털 꽂은 피리풍선은 삐빼 삐빼 울어댄다. 빵! 빵! 폭음탄도 터지고 자욱한 화약연기 속 곧 전쟁이 시작돼나 보다. 그렇게 상륙한 설386은 어린양들을 불편한 구석으로 몰아간다. 한구석, 의가사제대한 파월장병 ‘푸쉬킨 박씨’ 아저씨 주둔하는 학다리 이발소. 한쪽다리가 불편하시다. 그래서 학다리인지? 삶이 그대를 속였는데도 노하지 않고 쇠가죽에 칼 갈으며 오늘도 무사히 근무 중이시다. 머리뒤꼭지 지나 귀 옆머리 군데군데 여린나무 뿌리 채 뽑아가며 땅차 ‘바리깡’은 고랑 파며 전진이다. 아프다. 본인 뇌에서는 이발소그림 떠나지 않는다. 연밥머리 함석 물조리개 걸쳐있는 세면대 위에는 고진감래(苦盡甘來) 혁필이 칠면조색으로 춤을 춘다.
요즘 작업 ‘키치아트’를 주로 하니 과연 그런가보다. 다음구석이다. 공포의 태평목욕탕, 이곳은 한겨울에 곤충채집망으로 둥둥 탕에 떠다니는 잠자리를 ‘떼’로 포획한다. 그날 밤은 세로줄무늬 파자마 입은 대머리 일행 따라 ‘아우슈비츠’라고 써 있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침 일어나 잠자리가 척척하다.
즐거움으로 넘어가자. 386설 중 백미는 영화보기다. 흥행사, 요즘 말하는 블록버스터 외화를 수입하고 국내영화사, 돈 많이 들여 촬영해서 전국에 뿌린다. 서울과 전주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날이다. 극장 매표소 왼쪽가슴에 ‘동시개봉’이라고 붉은 고딕글씨로 새겨 건다. 영화이야기 조금 더 해보자. 평상시 개봉영화필름은 도청소재지 전주에 일주일 넘어 도착하는 데 그 외 지역은 몇 주를 더 넘긴다. 그렇게 몇 차례 재탕된 필름은 감독의 의도와는 별개로 어느 세계에도 없는 시네마 천국으로 인도한다, 상영해보자. 날씨 좋은날 저녁‘로마제국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시가지에 불을 놓는다. 망루에 서서 불구경하는 네로황제도,‘아라비아로렌스’는 낙타를 타고 바늘 찾아 사하라 사막을 점드락 헤메는데도 비는 내린다. 계속 내린다. 중앙동 아담다방마담 도금봉, 홍콩라이타돌 허장강씨, 탁자에 도라지위스키 두 잔 놓고 좋아하고, 그 뒤, 큰 L자 소파에 묻혀 연애하는 맨발의 청춘 남녀 신성일, 엄앵란 씨도 좋은날이다. 런닝타임 백분짜리, 오십분 넘어 가며 벌써 세 번의 키스타임이다. 이렇게 필름은 수시로 끊긴다. 나이 훔친 김 감독님, 감독지망생에게 한 말씀 하신다. 디지털 장비 없으면 작업 못하는 요즘 분들 우리는 진즉에 3D를 넘어 초입체, 관객과 함께하는 행위예술 작업을 했었다고, 아바타도 한참 멀었다 하신다.
하여튼 그렇게 386설은 세월의 징검다리 이발소 지나 목욕탕건너 영화관속을 관통해 2013년 계사년 ‘설’까지 와 있다. 지금으로 와서 별일이 생긴다. 전라북도에서 목욕탕, 극장이 없는 시?군에 설치작업이 들어갔다. 벌써 장수에는 작은 영화관이 만들어졌다. 올 설을 지나 다음 설에는 진안군 상전면, 임실군 방수리, 순창군 유등면에서도 작고한 국민배우 김승호, 이예춘, 황정순 씨도 만나볼 수 있겠다. 푸쉬킨박씨는 가고 없어도 목욕탕 부설 이발소에서 물레방아 도는 내력 구성진 노래 가락 들으며 장씨 영감 흰 수염 슬금슬금 톱질하는 장면도 보겠지. 삶이 무거운 도민들을 위해서 작은 미술관도 군데군데 곧 올린다고 하니 내년설이 그려진다. 그때는 그 장면 그려서 그 미술관에 폼 나게 거는 젊은 화가들도 생길 것이고!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라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