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법, 마이웨이 뿐일까.

박영학(원광대 신문방송학 교수)

미디어 법의 가장 큰 핵심은 재벌에게 방송 진입을 허용하는 것과 거대 보수 신문들에게 텔레비전 방송을 겸용하도록 문호를 열어주는 것이다. ‘미디어 소유의 개방’이 세계적인 추세인양 떠들며 미디어 소유를 개방하면 “2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덧붙인다.
마치 대자본에게 49%의 방송 지분 장악의 길을 열어주어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논리로 이해된다.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현재 전체 방송계 종사자들이 2만 명 남짓인데 말이다. 방송 인력은 공사판의 일용직처럼 쉽게 창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제대로 된 방송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대략 5년에서 10년 남짓 소요된다는 것이 업계의 정평이다.
오히려 대자본이 미디어 사업에 진입하면 구조 조정을 서두를 것이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생명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감원의 칼자루를 휘두를 것인데 무슨 수로 2만 개가 창출된다는 것인지, 기존 인원을 다 몰아내면 가능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디어 법’에 닿아있는 일각의 논지는 미디어법이 없으면 미디어산업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세계적인 미디어 업체인 미국의 타임워너 · 월터 디즈니를 든다. 양대 회사의 2007년 매출액이 46조원과 35조 원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상파 3사의 전체 매출액은 3조 4천억 원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고작 2.6%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럼으로 거대 복합미디어 그룹이 등장하지 않는 한 영세 방송산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논지다. 외견상 그럴듯한 논지이다.
이들 글로벌 미디어업체가 세계 미디어 산업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은 맞은데 문제는 타임워너나 월터 디즈니의 매출액의 상당 부분이 영화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쪽의 공헌인 점은 눈 감는다. 보도 기능이 영화 선전에 동원되어 여론을 독과점한 폐해는 눈감고 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나라 채널은 100여개에 이르렀다. 다양한 채널에 실을 콘텐츠의 빈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 자본은 영세한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쪽에 눈을 돌려 콘텐츠 발전에 기여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력도 방송 쪽보다는 쉽기 때문이다.
방송은 이중 가치를 추구하는 묘한 기업이다. 시장성과 공공성이다. 시장성은 방송을 통해 이윤극대화를 지향한다. 최대한 최대 다수인의 관심을 끌어 광고 단가를 끌어 올리려고 눈을 부릅뜨는 영역이다. 이른바 뼈를 깎는 시청률 경쟁 영역이 시장성이다.
그런데 방송이 시장성, 즉 돈 버는데 목적을 두면 공공성은 심하게 훼손된다. 보도 기능이 똑바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청자에 영합하려고 보도 부문이 심하게 엔터테인먼트화하는 문제점은. 이미 학계의 연구로 입증된 결과이다. 이윤추구를 위해 공공성 실현이 걸림돌로 작용할 때 대자본은 간단하게 공공을 적으로 간주하고 싸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디어 관련법이 국가적 필요성과 시급성을 지난 중요 사안임으로 이를 반대하는 편은 그 책임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고도 어른다. 정말 그러할까. 속셈은 국가적 필요성이 아닌 방송 사업에 진입하고자하는 몇몇 대재벌과 신문자본의 필요성이 아닐까.
시급성을 운운하는 저변에는 이번 정권하에 해치워야한다는 성급성이 아닐까.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절차를 극구 지연 내지 반대하는 미디어 위원회의 삐걱거림이 그런 증거이다. 그런데도 매사에 귀를 막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자는 이 판이 걱정이다.
정권 출발부터 ‘고소영’, ‘강부자’에 빗대는 비난에도 마이동풍이었다. 용산 철거민 사태로 죽어나간 사람이 15일째 장례도 못 치르는 판을 모르쇠로 일관한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대학교수들의 서명을 ‘대학교수가 몇 천 명인 데 몇 사람 때문에 호들갑이냐’는 투다. 군부독재시절에도 반대파를 설득하고 회유하는 노력을 폈다.
안하겠다던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살리기로 둔갑하고도 시치미를 뗀다. 대통령을 뽑았는데 경제 장관을 하겠다니 난감하다. 이미 국민통합에도 실패한 터에 남은 세월을 견딜 일이 암담하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