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니
「논어(論語)」 선진(先進) 제2장에서 공자가 “언어(言語)에는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공(子貢)은 재아(宰我)와 함께 말 잘하기로 유명한 제자입니다.
그런 자공이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병력을 충분하게 하며(足兵), 백성이 믿게끔 하는 것(民信之矣)이다.”고 대답합니다. 백성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입도록 해서 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것과 정치 · 경제 · 사회가 안정되도록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 그리고 백성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하는 세 가지가 정치의 요체라는 겁니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자공은 “이 세 가지 가운데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면, 먼저 무엇을 버려야 하냐는 겁니다. 자공은 말을 잘하는 제자답게 따지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우선순위를 매겨보자는 욕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공자가 자신의 물음에 쩔쩔매며 당황할 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공자가 누굽니까? 바로 말을 잘하기로 소문난 자공을 길러낸 스승이 아닙니까? 공자는 자공의 심술궂은 물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병력을 없애야지.(去兵)” 하고 대답합니다. 병력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병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일은 백성이 풍족하게 먹고살만할 때, 다시 말해 경제가 어느 정도 풍족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강병보다는 부국을 앞세워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말로 하면 우선 국방예산을 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자 자공이 또 묻습니다. “남은 두 가지 가운데는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나라가 힘들어서 국방예산을 줄였지만, 그래도 또 없애야 한다면 경제와 신뢰 가운데 어느 것을 버려야 하냐는 것인데, 이런 물음에 공자는 서슴없이 “식량을 버려야지.(去食)” 하고 대답합니다. 경제건설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백성들이 가난해서 밥을 먹지 못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의 믿음(民信)’만큼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풍족한 세상이라도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되면, 사람들을 결속시켜주는 사회의 구심력과 결집력이 뿌리 채 흔들려 부국강병의 토대도 무너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옛날부터 사람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아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던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믿음(民信)으로, 결국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도 백성의 믿음이 토대가 될 때 참된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여전히 통하는 정치의 대원칙이요,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불안할 정도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가 하면, 정부는 애초 계획보다 정부 예산을 더 늘린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정부는 경제와 안보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 말씀대로 ‘국민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신뢰의 바탕’이 되고자 하는 것이며, 모두가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국의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지성인들과 사회단체들은 그런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신뢰의 바탕’을 쌓기 위해 애쓴다는 이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사회갈등의 원천에 눈감고 현실을 왜곡하는 정부의 몰염치한 정책기조’라는 겁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백성들의 신뢰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인데, 지금 공자가 살아 있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정말 일부 교수들의 우려대로 시국선언은 바람직하지 않은 지성인의 태도일까요? “과연 공자라면?” 하다가, 문득 정치에 대해 묻는 계강자(季康子)에게 했던 공자의 다음과 같은 대답을 떠올려봅니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니, 그대가 먼저 나서서 바로잡는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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