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신문 길을 묻다
걸핏하면 지방시대라고 둘러댄다. 지방시대라는 단어는 글쓰기나 토론이 막힐 경우 어지간한 대목에다 끼워넣으면 대충 다 들어맞을 정도로 흔히 쓰인다.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부분의 문제를 거론할 경우 약방의 감초격으로 거론된다. 그런데도 유독 언론만큼은 지방시대와 거리가 멀다.
지역주민들의 지역언론 홀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중앙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면단위나 동네 소식을 찾을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중앙지를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지방시대를 부정하는 아이러니한 행동이다.
지방시대 또는 지방화시대라는 단어를 공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지방의회의 부활시기인 1990년대 초반부터다. 지방의회는 시장 군수를 직접 뽑는 지방자치시대로 이어져 이제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착근단계에 들어섰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성숙해지면서 지역별로 고유한 패러다임을 형성해나가고 있지만 뉴스의 중앙집중은 좀처럼 분산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지방시대라고 외치면서 뉴스만큼은 지역소식을 중요시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신문은 1988년이후 우후죽순격으로 창간됐다. 현재는 난립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지방신문의 난립은 비단 전북도내 현상뿐만 아니라 경기 전남도 등 전국적인 상황이다.
지방신문의 난립은 경영난과도 직결되고 있다. 신문산업의 어려움은 중앙지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국제금융위기 이후 중앙지들도 경영에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 신문산업을 지탱하는 한축인 광고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올들어 국회가 나서서 신문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최문순의원(민주당)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구독료에 대한 소득공제 방법 등이 그것이다. 독자 1인당 2부 정도의 구독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간 소득에서 공제해주는 방안 등이다. 마치 정당후원금을 10만원 한도내에서 소득공제 해주는 방식과도 같다. 신문사쪽이 아닌 신문을 구독하는 수요자(독자)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지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아직은 논의중이니까 조만간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방신문의 양적인 팽창은 질의 저하로 연결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일부 신문의 일탈은 전체 지방신문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지방신문은 지역의 대변자임에 틀림없다. 또한 지방시대를 이끌고 뒷받침하는 지역의 버팀목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스스로 낮춰서 뒤돌아봐도 지방신문은 역기능 보다 순기능이 월등히 많다. 경영상황과 별개로 언론의 사명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높은 정치관심과 중앙집권적인 사회구조는 지방신문의 영속성을 심각히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지역언론이 공급하는 뉴스는 중앙 소식을 원하는 지역 수요자의 구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논리로 보면 지방신문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방신문의 높은 이직률은 그 종사자들의 사기저하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면 지방신문의 쇠퇴를 사회현상으로만 돌리고 말것인가라는 우문이 또다시 제기된다. 중앙지의 경영이 어렵다고하니 국회가 나서는 모습은 지방신문도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보여진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지방신문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일부 지도층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지방지를 구독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숫자가 많다는 등 막연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종의 피해의식인 듯하다. 언론자유화 이후 20여년이 지난 이제 지방신문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의 건전한 비판과 더불어 상생의 지원책이 나올 때가 됐다. 지방시대에 지역언론이 튼실해야 지역민의 알권리가 보다 더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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