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인생에 대하여

지난 5월 필자는 한국 현대사에 큰 의미를 가질 두 가지 사건을 접하고서 ‘법’이 무엇인가? 법과 인생은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럽고 충격적인 서거 소식이었고, 또 하나는 안락사 이른바 ‘존엄사’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시 태광실업 박연차 사장으로부터 650만 달러를 수수하였다는 혐의로 그 동안 검찰 수사를 받아 왔다. 노 대통령은 집권 중은 물론 퇴임 이후에도 정권과 대통령 자신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아 왔는데, 뇌물 관련 스캔들로 자신은 물론 부인과 자녀들까지 검찰 수사를 받고 연일 언론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대서특필되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짐으로써 온 나라를 충격과 비탄 속에 빠뜨렸다.

필자는 노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하여 정권의 표적수사의 결과라거나, 대통령의 혐의유무에 대한 검찰 수사방식의 문제로 그런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논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법과 인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대법원에서 ‘의학적으로 회복불가능한 시한부 환자의 경우 환자 자신이 단순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지가 명백한 경우에 존엄사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판결을 하였는데, 그 판결이 선고되자마자 환자의 가족들은 병원측에 산소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법과 인생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생은 유한하다. 인간의 수명이 예전보다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고작 100년을 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시켜 볼 때 우리 인류의 역사는 23시 59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동물과 차별화된 삶을 살게 된 문명시대는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우리는 자자손손 대를 이으며 이 세상의 삶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짧은 인간의 삶을 규율하기 위하여 이른 바 ‘법’이 존재한다. 인간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법’을 지키며 법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하거나 만족을 얻게 된다. ‘법’을 어기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면, 인간의 삶 속에 온전히 자리 잡고 인간의 삶을 규율하는 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국가의 강제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은 영구불변하지도 않고, 지고지순하지도 않으며, 만고의 진리도 아니다. 다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지켜지도록 요구되는 그 시대의 한시적인 ‘가치규범’일 뿐이다.
작금 우리 시대의 ‘법’에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서는 안되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치료가능성이 없는 회복불가능한 환자라 하더라도 함부로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지 못하도록 ‘법’에 의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이 비록 엄격한 요건을 전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존엄사를 인정함으로써 이제 ‘법(판례도 하나의 法源이다)’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인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끊게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또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법원칙을 내세워, 우리 시대의 ‘법’이 요구하는 ‘법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져 버리는 비극적인 일도 일어났다.

필자는 노 대통령의 혐의유무에 대하여, 또 수사의 개시와 방식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 어떠한 개인적 견해도 유보하고 싶다. 다만, 우리가 실현해야 할 ‘법치’도 결국 우리 모두의 공존과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유연하게 ‘법치’를 실현할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에게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거칠게 몰아붙여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게 하는 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법치’인가? 그게 ‘법치’라고 한다면 언제부터 우리 시대의 ‘법’이 이렇게 ‘냉혹’해 졌는가? 노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 국가 사회 구성원 모두 ‘법치’의 합당한 실현에 대하여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다고 단죄된 개개인에 대하여 언론과 국가권력에 의한 인격적 살인을 서슴지 않으면서 법치를 실현해 오지는 않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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