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다. 이를테면 가족이라든지, 고향이라든지. 내게 변산은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과 가치를 몰랐던 곳 말이다. 심지어 저 멀리 타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볼 때면 ‘굳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변산을 배경으로 영화로 만나게 됐다. 별 기대 없이 본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였고, 변산에 대한 내 생각마저 완전히 바꿔놓았다. 너무 자주 가서 지겨웠던 곳은 친근한 곳으로, 낯선 곳은 새로운 곳으로 만들어준 영화
순창 채계산 평야 대형 논 그림 ‘웃는 여신(女神)’살아서든 죽어서든 ‘살 맛’나는 순창맑고 창성한 땅 순창. 예로부터 물이 맑고 순박하며, 인심이 후덕하다 했던 곳. 전라북도의 동남부 산간 분지에 속해 있으면서도 풍부한 농경지 덕에 삶이 윤택하고, 자연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진 땅.때문에 ‘생거순남(生居淳南) 사거임실(死居任實)’, 즉 살아서는 순창?남원이 좋고, 죽어서는 임실이 좋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생거장성(生居長城) 사거순창(死居淳昌)’이라는 말도 있다. 살아서는 장성이 좋고, 죽어서는 순창이 좋다
벼슬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정자는 중앙에 자리 잡고 샘과 돌은 절경이기 때문이네/강물은 달리고 들은 멀리 퍼져 있으며/산은 작은 정자를 안고 높았네/대숲이 있으니 뜰이 고루 고요하고/어여쁜 꽃은 자리를 다시 아름답게 꾸몄네/마음은 애오라지 스스로를 즐김에 맡겼으니/이미 세상과는 서로 어긋나네! (강희맹의 「귀래정」 중에서)조선 전기의 문신 신말주(申末舟)는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의 동생으로,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벼슬에서 물러나 처의 고향인
나는 머리를 빡빡 깎고 검정색 교복을 입고 중고등학교에 다녔다. 사회 전체에 권위주의와 군사문화가 드리워져 있던 시대였다. 국가가 사람의 존엄성을 업신여기던 시절이었으니 ‘학생의 인권’이라는 것은 아예 개념조차 없었다.선생님은 ‘하늘’이었다. 스승의 날 노래의 가사처럼 좋은 의미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영화 나 에 나오는 풍경처럼 선생님이 때리면 학생은 맞아야 했다.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지만, 개인적 성품과 무관하게 선생님과 학생은 ‘다른 계급’이었다. 그런 계급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교장선생님
시원한 바다, 파란 하늘, 작열하는 태양. 우리가 흔히 여름하면 떠올리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여름 영화 속 풍경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내게 여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이다. 그 이유는 무척 단순하다. 이 영화를 찍은 동화처럼 예쁜 마을이 바로 내 고향 김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같은 김제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그저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3년 4월은 막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니
백제 무왕(武王)의 숨소리 따라아홉 마리 용이 수호신이 되어 마을을 지켜준다는 익산시 금마면 구룡마을. 이곳에 한강 이남에서는 최대 군락지를 자랑하는 대숲이 있다. 전체 면적이 5만 제곱미터나 되는 장대한 규모의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웅웅웅, 먼저 귓전에 닿는 곳.금마는 그 옛날 마한의 도읍지였다. 무왕이 백제 중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운 백제의 마지막 고도. 바로 그 구룡마을 끝 언덕받이의 400년 된 느티나무 밑 정자에서 바라보면, 광대한 대숲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건너다보고 있으면, 백제 무왕(武王)의 절박한 숨소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巖寺) 가는 길. 안도현 시인이 그의 시, 「화암사, 내 사랑」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 그 길은, 때 이른 더위를 탓하기 무색했다. 댕강나무,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그 길은 굳이 시인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저절로 사람을 잡아끄는 기운이 있었다. 선경(仙境)으로 가는 길은 모두 이러할까? 초록의 이끼가 머금었다 내뱉는 또랑또랑한 계곡물 소리와 쉬울 듯 어려울 듯 첩첩 계단들은 이곳이 심산유곡이라고 말하고 있었다.속세와의 경계를 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마지
솔직히 고백하건데 는 흔히 말하는 ‘내 인생의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 내 인생의 영화가 영화냐 물으면 보다 ‘있어 보이는’ 영화를 대곤 했다. 그런데 전라북도에서 촬영한 많고 많은 영화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였다. 심은하를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살며시 미소 짓던 한석규의 모습이 몇날 며칠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쩔 도리 없이 어느새 개봉한 지 스무 해가 훌쩍 넘은, 이제는 고전이 된 그 영화를 만나러 떠났다.영화의 주 배경인 정원의 일터
화가 이주리와 알고 지낸 지 여러 해 됐다. 술친구의 술친구로 만났다. 그림에 대해서나 화가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연재의 첫 꼭지에 대뜸 이주리 화가를 꼽은 것은 그의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자질구레한 규범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배타적이거나 냉소적이지 않다. 태도는 겸손하고 시선은 따뜻하다. 타인에 대한 경청과 연민을 잃지 않는다. 요즘 말로 ‘볼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다.이주리는 김제 금구면의 야트막한 골짜기에 혼자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마을을
칠송대(七松臺) ‘도솔암 마애불’선운사라는 이름은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라고 하는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당시에는 무려 89개의 암자와 24개의 굴,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불국토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선운사만큼이나 유명한 곳이 선운계곡이다. 선운산의 또 다른 이름인 도솔산(兜率山)에서 따와 ‘도솔천(兜率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계곡. 선운산 일대 경관의 백미라 하여 명승 제54호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이 계곡 따라 다양한 수종들이 어울
연둣빛에 싸인 고택은 꿈을 꾸는 듯 고즈넉하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국가 민속문화재 26호 김명관 고택. 문화재 지정 당시는 소유주였던 ‘김동수 가옥’이었으나 집을 지은 6대조 김명관의 이름을 따서 2017년 명칭을 변경하였다. 일명 지네산이라고 불리는 청하산을 뒤편에 길게 두르고, 앞으로는 동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집터 명당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고택은 조선 정조 8년에 김명관이 18세에 짓기 시작하여 10여 년에 걸쳐 지은 집이다. 바깥 행랑채와 연결된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그마한 문간 마당에서, 봄